‘올리브나무사이로’라는 시적 뉘앙스가 짙게 풍기는 옛 레스토랑 건물을 무소속 황순덕 후보는 선거사무실로 얻어 사용하고 있다. 역전이라 사람들의 내왕이 빈번했고 2층 사무실로 이어진 목조계단을 오르는 구두 뒤축에 대지를 맨발로 걷는 듯 포근함이 전달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루떡을 자전거에 싣고 온 노인을 뒤따라 들어 간 사무실 한쪽벽면에는 황 후보의 의정활동을 보여주는 대형 걸개그림이 차지하고 있었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컬러링만이 그의 부재를 대신했다.
-컬러링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데 뒤늦게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약속시간에 늦어 죄송합니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와서 마침 오늘 조치원읍 장이 서는 날이라 시장을 돌다 보니 늦었습니다. 컬러링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하지만 저는 독도를 4번이나 방문 했습니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편단심 민들레’와 함께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지난 23일 의회에서 출마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밝혔듯이 이번 17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세종시설치법이 통과됐다면 군수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았지만 끝내 법안이 폐기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앞장 서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후보등록 마지막인 26일 등록을 한 것입니다.”
-선거는 흔히 구도(정당)와 인물, 바람 이라고 하는 데 5선의 기초의원으로서 인물은 검증됐다고 해도 구도와 바람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특히 무소속 후보로서.
“제 이름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만 2번의 삭발과 3번의 단식을 하는 동안에 삭발과 단식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아 그 친구라고 반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2030년까지 80조원이 투자되는 행정도시건설이 안정적으로만 진행된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2000만 수도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54만명의 서명으로 위헌소송을 내 행정수도이전이 무산됐을 때 연기군민이 혼연일치돼 분연히 일어설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바람이 일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황 후보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종시와 등가로 생각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도 같은 어려움을 스스로 자처하면서까지 하는 이유는
“마지막 단식에 들어갔던 지난 5월20일은 일행들과 함께 경상남도 함양을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통추위 성명서 낭독을 함께 울분이 안 풀려 단식에 들어간 것입니다. 집사람의 걱정이야 다를 바가 없겠지요. 하지만 항상 곁에서 묵묵히 내조를 다하고 있어 항상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이 저를 이렇게 변모시켰습니다. 원래 이름도 순박할 순(淳)자에 큰 덕(德 )으로 남에게 말도 잘 못 붙일 정도로 내성적이었습니다.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에게 과격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지 않고 중심에 서 있다 보니까 자연스레 행동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91년 지방자치와 함께 군 의원을 시작해 이제는 5선이란 녹록치 않은 관록을 얻기까지 재정적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원래 저의 꿈은 일찍이 전문 농업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80년대 초, 마늘과 멧돼지 농장을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유통단계에서 생산자는 철저히 외면되고 중간상들만 이득을 보는 구조이다 보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서른여섯이라는 나이에 처음 의원배지를 달아 올해까지 16년간이지만 그동안 가정경제는 거의 돌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의정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농촌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해에 사비 1000만원씩을 들여 복숭아아가씨 선발대회를 비롯해 대도시를 돌며 조치원복숭아를 알리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지금도 조치원의 복숭아 명성을 되찾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노력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낭중지추라고 주머니 속에 송곳은 언제가 밖으로 나오기 마련인데 16년이라 내공은 너무 오랜 시간이 아닌지.
“기초의원을 하다가 도의원을 거쳐 단체장에 이르는 길이 입신양명의 공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우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번 출마결심은 그동안의 선거과정을 통해 분열된 민심과 행정도시 건설과정에서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사분오열된 지역여론을 하루빨리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2004년 10월21일 위헌판결 이후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결집력을 되살려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160여개 지역협의회와 의정동우회 등의 협의체를 구성해 중지를 모아 나아간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어제 열린 연기군의회 정례회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청가서 내는 표정이 자못 남달랐는데 어떤 심정이었는지.
“어제부터 정례회 회기가 시작됐는데 이번에 출마를 하게 돼 동료의원들께 죄송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결과도 모르는 선거전에 동료의원들과 사전 조율도 없이 뛰어들게 됐지만 개인적 판단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개소식도 당초에는 오후 2시로 했다가 회기시간에 맞춰 1시30분으로 조정한 것입니다.”
-서천 장항산단의 경우를 보더라도 기초단체의 경우는 중앙의 눈치뿐만 아니라 도와의 관계에서도 약자일 수밖에 없는 데
“저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지사와도 언제든지 의견 협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무릎을 맞대고 진지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얼마든지 최선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 열린우리당 당적을 갖고 있다가 이번 재선거에는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는데 만약 당선이 되면 당적을 유지할 것인지.
“지금 연기군에서는 당적보유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행정도시 건설과 관련해서는 무소속으로 남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됩니다. 당선 후 설사 러브콜이 들어 온다고 해도 행정도시 완성까지는 무소속으로 남을 것입니다.”
휴대폰에 입력된 사람수가 700여명 정도라는 황 후보는 선거조직도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출마했다고 말했다.
쉽고 편안한 길을 굳이 마다하고 진자리를 골라 딛는 그의 정치적 행보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사건을 만들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 않는가.
지난 7월20일 열렸던 행정도시 건설청 기공식에도 초청받지 못했던 그는 서운함 보다는 그 자리에서 차라리 분신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담담히 토로했다.
스스로 순박하다고 하는 그의 얼굴에 순간 전태일이 오버랩 됐다.
<약 력>
△경희사이버대학 행정학과 재학
△연기군 의회 1,2,3,4,5대 의원
△연기군의회 의장(전)
△신행정수도 추진 연기군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충청남도 이·통장 연합회 고문
△농업발전기금 운영위원
△조치원중학교 20회 회장(전)
△조치원고등학교 운영위원장(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연기군 간사
△연기군한마음장학회 부위원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