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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는 많은 비림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동안 수차례에 걸친 중국방문을 통해 한.중문화교류에 참여하여 역사(歷史), 문화(文化), 종교(宗敎), 회화(繪畵), 조각(彫刻), 서예(書藝)등에 관한 자료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중국 섬서성에 있는 고대 비림인 서안 비림과 하남성 개봉시에 있는 한원현대비림을 보고 비림을 알게 되어 대한민국의 후손에게도 이러한 역사적 작품들을 한 곳에서 감상하고 배우게 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림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것입니다.
☞ 많은 유명인들의 작품들을 전시하였습니다.
한국비림박물관에는 신라시대 김생선생 글씨로부터 제14대 대통령이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작품까지 국보급 300점이 각인되어 있으며, 또한 한국 중진작가와 중국대가들께서 한국비림박물관 개관 기념 축하 서화작품 100여점과 유부안, 석념평, 왕령도자기 100여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국력신장의 비전과 신념을 갖게 하는 정신문화의 교육도장입니다.
한국비림박물관에는 10여년동안 수집한 일본군 제731부대의 중요자료 100여점이 전시되어 이를 눈으로 확인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잊혀져 가는 우리의 암울했던 역사를 재조명 해 국력신장의 비전과 신념을 갖게 하는 정신문화의 교육도장이 될 것이며, 또한 한국광물연구소소장이시며 KBS진품명품 감정위원이신 김동섭박사께서 기증하신 패류 100여점과 산호 65점이 전시되었는데 이를 관람하므로써 더 넓은 웅비의 나래를 펼칠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세계속에 우뚝 선 문화대국 한국문화건설에 최선의 열정으로 앞장 설 것입니다.
한국비림박물관은 3만여평의 상설비림전시관을 중심으로 대규모 비림관광단지를 조성될 계획아래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시대 및 현대의 다양한 작품들을 두루 확보하여 특수모형의 비랑을 세워 건국이래 역사상 국민들이 존경하는 예술인, 정치인, 교육가, 공직자, 종교인, 경제인등 위대한 인물들의 업적을 비에 담아 외국인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예술 및 교육도장으로 승화, 발전 시킨다는 역사적인 사명감을 갖고 멸사봉공과 우공의 정신으로 21세기 세계속에 우뚝 선 문화대국 한국문화건설에 최선의 열정으로 앞장설 것을 다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단법인 한국비림박물관 허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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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는 상나라, 당나라, 금, 원, 명, 청조를 거치면서 이미 비림의 개념을 갖춘 박물관이 생겨 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섬서성에 위치한 고대 비림인 서안 비림이나 개봉시에 한원비림 등 여하간의 도시에서는 비문의 탁본이나 서예, 조각, 정치,종교, 경제등 역사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은 비림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사회와 문화 예술의 실체를 한자리에 모음으로써 자국문화예술의 근원 및 발전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비림들은 관광객들이 그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1990년 서예전을 갖기 위해 중국을 방문 비림을 보고 받은 감동을 토대로 한국에도 비림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신념아래 반만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지만 정작 역사적 자료들을 한자리에 정리해 놓은 변변한 공간하나 없는 아쉬움이 본격적으로 논의 되기 시작하여 한국비림박물관을 열게 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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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9월 19일 : 중국 흑룍강성장 및 서화중인작가들과 한국측에서 제14대 대통령이신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찬조출품하여 한.중서예 작품전개최
-. 1992년 12월 18일 : 중국하얼빈 공업대학교 양사근 총장께서 한국을 방문 거산선생께 평생명예교수증 수여 한.중 국교정상화 이전에 한.중문화교류의 새장을 여는데 기여함
-. 1993년 6월 : 동방프라자 미술관에서 송석 정재홍,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문우식 전 홍익대 교수외 50여명과 중국측에서 진뢰 흑룡강성 전 성장외 서화가 40여분이 한.중 친선 서화전을 개최하여 한중문화교류를 더욱 촉진
-. 1994년 6월 : 한국디자인작가협회 백금남회장. 현 성균관대학교 미술대학장 외 15인의 작가와 중국전시회를 추진 북경. 연변, 하얼빈, 연태등에서 한.중 디자인교류전 개최
-. 1994년 10월 : 하남선 중원공자학회 및 정주유학문화와 현대화 국제연토회에 한국측 대표단단장으로 참석 공자사상에 대한 주제 발표
-. 1997년 6월 5일 : 사단법인 인가를 받음 (문화관광부 허거번호 444호)
-. 1998년 : 하남성 개봉시를 방문, 현대 비림박물관중 가장 규모가 큰 한원비림을 재차 견학하고 한원비림 창건이신 이공도 선생으로부터 비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동시에 가칭 한국비림박물관과 자매결연을 맺음으로써 많은 자료를 확보
-. 1998년 5월 : 서울디자인 포장센터 미술관에서 세계미술대전 개최
-. 200년 6월 : 하얼빈공업대학교에서 개교 85주년 기념행사에 김영삼전대통령을 수행하여 참석하고 중국문화도시를 방문하게 되었으며 하얼빈시의 제731부대 일명 생체실험부대를 관람하였고 하남성 개봉시에 있는 한원비림을 방문하게 되어 한국비림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역사적인 동기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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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림(碑林)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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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歷史), 문학(文學), 종교(宗敎), 회화(繪畵), 조각(彫刻), 서예(書藝) 등 역사상(歷史上) 위대偉大)한 인물(人物)의 업적(業績)을 비석(碑石)에 각인(刻印) 영구(永久)히 보존(保存) 하여 문화유산(文化遺産)을 계승(繼承) 하며 고귀(高貴)한 정신(情神)을 숭상(崇尙)하고 민족문화(民族文化)가 발동(發動)하는 정신문화(精神文化)의 교육도장(敎育道場)을 조성(造成)함으로서 국민(國民)의 모든 얼과 힘을 결집(結集) 하고 국가(國家)의 번영(繁榮)과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함과 동시에 민족문화(民族文化)를 보급개발(普及開發)하는 것을 비림(碑林)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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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림(碑林)의 유래(由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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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림(碑林) 은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인류(人類)가 문화(文化) 전적(典籍)을 전(傳)하고 보존(保存)하는 중요(重要)한 형식(形式)이다. 아직 한국(韓國)에는 비림(碑林) 이 없기 때문에 중국(中國)비림(碑林) 에 대하여 고찰(考察)할까 한다. 중국(中國)의 비림서법예술(碑林書法藝術)은 중국민족(中國民族)의 근면(勤勉)과 지혜(智慧)를 체현(體現)하였고 정미(精美)로운 고대문화예술(古代文化藝術)과 역사발전(歷史發展)을 반영(反影)하였으며 중국(中國)에는 역대(歷代)의 비림(碑林) 이 많이 있다.
이것이 중국문화(中國文化)의 전통(傳統)을 이루었고 석고문(石鼓文은) 진(秦) 나라의 문화유물(文化遺物)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전국(全國) 각지(各地)를 유람(遊覽)할 때에 봉산(峰山), 태산(泰山), 랑야(琅邪), 갈석(喝石),
회계(會計) 등지에 석각(石刻)으로 역사(歷史)를 기록(記錄)하는 것이 성행(盛行)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漢) 나라 희평년간(熹平年間)에 비림(碑林) 이 형성(形性)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년전(二天年前)의
일이다.
중국(中國)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비림(碑林) 은 서안비림(西安碑林)인데. 서안비림(西安碑林)의 시작(始作)은
당(唐)나라 말 오대시기(五代時期)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송(宋)나라 철종(哲宗) 원우오년(元佑五年)에
비림(碑林)을 정식(定式)으로 건립(建立)한 시기(時期)이며 지금으로부터 약 구백년전(九百年前)의 일이다.
이곳은 중국(中國)에서 비림(碑林)을 가장 많이 보존(保存)하고 있으며 서예(書藝)의 보고(寶庫)라고 정평(定評)이
되고 있다. 한(漢)나라 위(魏)나라 이래로 이천삼백여점의 비석(碑石)을 소장(所藏)하였고, 진(秦)나라 이사(李斯)의
봉산석각(峰山石刻), 한(漢)나라의 을영비(乙瑛碑) 조전비(曹全碑) 북위(北魏)에 원정묘지(元楨墓地) 등이 있으며
당대(唐代)의 것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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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碑林)의 역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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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림(碑林)은 서각예술(書刻藝術)로 입체적(立體的)인 조각군상(彫刻群像)을 이루어 보통(普通)인쇄품(印刷品)으로는 도저히 감상(感想) 할 수 없는 정미(精美)로운 예술특색(藝術特色)과 매력(魅力)을 구비(具備)하고 있다. 훌륭한 비림(碑林)은 그 나라의 지명도(地名度)를 높이고 그 나라의 문화발전(文化發展)과 관광(觀光)에도 매우 효과적(效果的)인 역할(役割)을 할 것이다. 비림(碑林)은 또한 현대(現代) 예술가(藝術家)들의 예술(藝術)진품(眞品)을 전시(展示)하여 선전(宣傳)하는데도 공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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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의 비림(碑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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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안비림(西安碑林) : 중국(中國) 역대(歷代) 명가(名家)들의 정품(精品)들을 집중(集中)하여 오천년(五天年) 역사(歷史)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비림(碑林) ☞ 한원비림(翰園碑林) : 하남성개봉(河南省開封), 창건인(創建人) 이공도선생(李公濤先生)이 많은 고난(苦難)을 겪으면서 우공정신(愚公精神)으로 기여 자기전재산(自己全財産)과 각계각층(各界各層)의 협조(協助)로 성사(成事)된 최고(最高)의 비림(碑林) ☞ 황하비림(黃何碑林) : 황하강(黃何江) 유역(流域)에있는 비림(碑林) ☞ 논어비림(論語碑林) : 산동성곡부시(山東省曲阜市) 공자의 고향에 규모(規模)가 아주 큰 논어비림(論語碑林)을 건립(建立)하기로 결정(決定), 공자(孔子0의 논어 (論語)를 512개 비석(碑石)에 새기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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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비림(碑林)의 서체(書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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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서체(隸書體) : 대지신사비(大智神師碑) 당(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가 쓴 석대효경(石坮孝經)등 ☞ 초서체(草書體) : 지영(知永), 회소(繪素), 장옥(張旭), 천자문(千字文)등 ☞ 행서(行書) : 회인집(懷仁集) 왕희지(王羲之) 성교서(聖敎序) 등 ☞ 해서(楷書) : 구양순의 황보탄(皇甫誕), 우세남(虞世男)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안진경(顔眞卿)의 다보탑비(多寶塔碑), 근례비(勤禮碑) 유공권(柳公權)의 현비탑(玄秘塔), 원(元)나라 조맹부, 명(明)나라의 동기창(董其昌), 청(淸)나라의 강희(康熙), 유석암(劉石菴), 임측서(任則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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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비림(碑林)의 특징(特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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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中國) 서안비림(西安碑林)이 사해(四海)에 널리 알려질 수도 있는 것도 중국(中國) 역대(歷代) 명가(名家)들의 정품(精品)들을 집중(集中)하여 오천년(五千年) 역사(歷史)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百)가지 꽃이 만발(滿發)하는 각 품격(品格)의 서체(書體)는 물론이거니와 인물(人物), 화조(花鳥), 산수화(山水畵)등도 조각(彫刻)한다면 후세(後世)들에게 가치(價値)있는 예술(藝術)보고(寶庫)로 남겨줄 수 있는 것이 비림(碑林)의 특징(特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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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글씨라 할 수 있는 것은 광개토대왕릉비이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이 부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고구려의 옛도읍지인 국내성의 호태왕릉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6.39M이고 각 넓이는 전후 2M이며 좌우가 3.1M로 총중량이 37Ton이나 되는
거대한 방주형(方柱形)으로 녹색을 띈 회색응회암 자연석의 4면을 모양대로 다듬은 다음 그 위에 10CM씩 되는
큰 글자를 가득 새겨 넣은 특수한 비형을 하고 있어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전통을 가진 고구려 고유색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글씨체도 기묘하여 기본적으로 위예법(魏隸法)에 바탕을 두었으나 해법(楷法)을 가미하면서 파책(坡策)의
교(巧)를 극도로 자재함으로써 오히려 고예(古隸)의 질박웅경(質撲雄勁 : 바탕 그대로 소박하며 크고 굳셈)한
필법에 가까운 듯하되 방정근엄(方正謹嚴: 네모 반듯하고 근엄함)한 기미는 이와는 또 달라 고구려 특유의
서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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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비림박물관에서는 광개토대왕비를 실물과 똑같이 제작하여 후손들에게 길이 보여 주고 그 기상을
본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현재 원석을 구입하고 있으며 제작을 위한 글씨를 실물크기로 제작하여 보관하고
있으며 원석이 구해지는대로 석경작업을 거쳐 진열하게 됩니다. 이 광개토대왕비가 제작되어 한국비림박물관에
전시되면 역사를 공부하는 후손들에게 커다란 보탬이 되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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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림박물관(韓國碑林博物館)의 설립(設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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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의 번영(繁榮)은 그 나라 나름대로의 주체적(主體的)문화(文化)가 있어야 번영(繁榮)의 토대(土臺)를 다질 수 있으며 또한 민족(民族)의 도약(跳躍)도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의 고유문화(固有文化)도 우리국민의 노력(努力)과 각성(覺醒)으로 끊임없이 연구(硏究)하고 다듬는 부단(不斷)한 개선과정(改善課程)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속의 맑은 물과 같이 오염(汚染)되지 않고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영원(永遠)히 생명수(生命水)가 되어 흐르도록 하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고귀(高貴)한 문화를 정화(淨化) 시키고 보존(保存)하여 참된 일을 후손(後孫)에게 인수함과 동시(同時)에 우수(優秀)한 동방문화(東方文化)를 숭상(崇尙)하여 참되고 가치있는 민족문화(民族文化)로 전승개발(傳乘開發) 하는데 정성(精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취지(趣旨)와 함께 나아가 훌륭하고 슬기로운 민족정기(民族精氣)로 발로시켜 한국문화발전(韓國文化發展)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사명감(使命感)에서 사단법인 한국비림원(韓國碑林園)을 설립(設立)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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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림박물관(韓國碑林博物館)의 목적(目的)과 취지(趣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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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社團法人) 한국비림원(韓國碑林園)은 고귀(高貴)한 정신(情神)을 숭상(崇尙)하고 민족문화(民族文化)의 정신(情神)이 발동(發動)하는 정신문화(精神文化)의 교육도장(敎育道場)을 조성(造成)함으로서 국민(國民)의 얼과 힘을 결집(結集)하는 국가(國家)의 번영(繁榮)과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함과 동시(同時)에 민족(民族)과 문화(文化)를 보급개발(普及開發)하는데 그 목적(目的)과 취지(趣旨)를 두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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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림박물관(韓國碑林博物館)의추구하는 방향
☞ 명승지(名勝地)에 특수모형(特殊模型)의 건축물(建築物)인 비랑(碑廊)을 세워 역사상(歷史上) 국민(國民)들이 존경(尊敬)하는 예술인(藝術人), 정치인(政治人), 교육자(敎育者), 종교인(宗敎人), 경제인(經濟人) 그리고 공직자(公職者)등 위대(偉大)한 인물(人物)들의 업적(業績)을 담아 국민(國民)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긍심(自矜心)을 심어 주고 국력신장(國力伸張)의 발전(發展)과 신념(信念)을 갖게 하는 정신문화(精神文化)의 교육도장(敎育道場)으로 보존(保存) 발전(發展)시켜 나아 가야 할 것이며 후세(後世)를 위한 역사적(歷史的) 인 금자탑(金子塔)이 될 수 있도록 투철(透徹)한 사명감(使命感)을 갖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精神)으로 21세기(世紀) 세계(世界)속에 문화대국건설(文化大國建設)으로 우뚝설 수 있도록 최선(最善)의 열정(熱情)으로 앞장설 것입니다.
[비림박물관 동영상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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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명한 석경 제작자 초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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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 제작은 가느다란 선을 비석에 새기는 작업이라 무척 정교 하고 섬세해야 하므로 중국에
석경 제작에 전문적인 기술을 보유하고있는 제작자를 초빙하여 상주해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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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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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생 하남성 신밀시 ※ 1966년 우점기공학교 졸업 ※ 농진기본 건설 기술원 ※ 1981년 이공도 선생 무사봉공 정신에 감동 (동방 문화예술에 공헌) ※ 18년동안 학생(수제자)30여명 양성 ※ 비림 (비석 각비) 3800여점 ※ 신화사사장 목청선생 행서비각 천진화가,경천택. “마고현 수도” “여과보천” 음양결합 각법(刻法) ※ 천진TV 방영 ※ 1977년 광동성 향항 서화원장 조셰광선생 (화조1백점 난화300점 고금명품 500여점 각비) ※ 개봉일보.TV 변양만보.인민일보.문화오락보,대하보,향항대공민,등 비림공신 소개 ※ 2002년 한원비림 이공도 선생 부탁으로 진상군 창계철 비각사를 대동하고 한국비림박물관파견 ※ 허유선생의 고군분투 무사봉공 정신에 감동하여 노력 결심하여 동방문화의 보고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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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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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생 중국 남양시 농촌가정에서 태어남 ※ 1994년 우연히 개봉시 한원 비림 이공도 선생의 훌륭한 인품에 감동 개봉 한원 비림에 입사!
비각 기술의 교육을 받고 97년 광동성 비각을 위하여 공헌 ※ 한원비림 이공도 선생의 중대한 부탁으로 한국으로파견 ※ 한국비림이 동방문화가 꽃 피울수 있도록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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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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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중국 하남성 남양시 방성현 ※ 1991년 개봉시 하원비림 공작실에 입문 ※ 13년동안 초서.예,회화 등 유명한 작품 수백점을 각비 ※ 방송 신문사 등 많은 호평을 받음 ※ 95년 북경에서 6개월 비각을 만듬 ※ (안진경 구량순 등 비첩) ※ 97년 호북성 원극비림 각비 인물화(법계원류도,만화도.서법비각) ※ 98년 광동성 광주시 2년각비 (인물 산수 화조 매난국죽 등 작품) ※ 2002년 6월 고군분투하여 무사봉공 정신으로 각비하여 세계정품을 만들라는 부탁으로 한국비림박물관에 파견
한국비림박물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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