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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살리기- 농업만 짓겠다는 생각 버려야

행정수도 세종! 2009. 1. 10. 20:15

농업살리기⑥ - 농업만 짓겠다는 생각 버려야

농업만 짓겠다는 생각 버려야
혹독한 수업으로 경영 마인드 가르쳐…스타 농업인 100여 명 배출
희망 찾기⑤ 함평의 새로운 실험

▶함평의 새로운 발견.


한·미 FTA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석형 전남 함평군수는 한마디로 답한다.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다른 지자체 단체장과 마찬가지다. 또 물었다. “대책이 뭐냐”고 했다. 즉답이 나왔다. “다양한 생존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존 방식. 맞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방식은 다양하다. 똑같이 잘 먹고 잘 살아도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다른 문제다. 개방의 시대를 맞은 함평의 대응 역시 이 군수의 얘기대로 ‘다양한 생존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함평은 ‘단수’가 아닌 ‘다수’의 생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수(複數) 전략’이라고나 할까.

나비 축제 ‘대박’

일단 전면에 나비 축제를 앞세운다. 함평 나비 축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수백 개 축제 중 가장 성공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군수의 표현을 빌리면 “워낙 주제가 좋아” 첫 회부터 대박을 쳤다.

1999년 제1회 축제 때,일주일 전후한 기간 방문객 수는 무려 66만 명. 도로나 시설 등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태에 함평 군민 모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지난해 방문객은 171만 명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축제는 분명 농업 이외의 소득을 주는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자체가 각종 축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농축산업이 주산업인 지자체에 축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축산물을 당장 팔아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함평이 나비 축제에만 목매는 것은 아니다. 이 군수는 나비 축제를 기획하며 이미 상품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농산물만 갖고 먹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이 군수는 민간 디자인 전문업체에 의뢰해 농산물 이외의 제조품을 만들고 브랜드까지 고안해 냈다. “농산물이 아닌 말 그대로의 디자인 ‘명품’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브랜드 이름은 ‘나르다’.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시키는 이 브랜드 명은 지난 7~8년 사이 상당한 명성을 알렸다. 제품은 지방 농촌 한 곳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다. 넥타이, 머플러에 브로치 등 각종 액세서리까지. 종류만 30종 가까이에 이른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골 촌구석에서 웬 명품이냐고 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함평군은 해냈다. 성공 요인은 민간에 아웃소싱했다는 점이다. 만일 군이 이 모든 것을 직접 관장했다면 실패가 뻔했다. ‘나르다’의 디자인과 제조·판매를 맡은 업체는 누브티스로, 이 회사 이경순 대표는 히딩크 넥타이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코디를 맡았던 유명 디자이너다.

“함평 나르다의 성공은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농업을 주로 하는 지방의 기초단체가 지역과 전혀 관계없는 명품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성공했기 때문이지요. 나르다는 이제 명품의 기초를 닦았고 브랜드 가치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 대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 브랜드 가치가 1000억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

▶함평은 나비 축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나비·곤충 엑스포를 준비 중이다.


넥타이에 브로치까지

나르다 전략은 함평만의 특수한 사례다. 농업 기반을 활용하지 않고 공공부문이 직접 제조업, 그것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다. 그만큼 ‘성공’의 의미는 크다. 함평은 ‘농업만이 살 길이 아니다’는 전형적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는 “함평의 사례는 농촌이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끝인가? 아니다. 함평은 더 나아간다. 나비 축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나비·곤충 엑스포를 준비 중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나비 축제와 동시 개최되는 엑스포에는 세계 곤충학자들이 몰려든다. 이 군수는 “나비나 곤충을 주제로 한 엑스포는 세계 최초여서 관심을 많이 끈다”며 그 취지를 설명한다.

‘세계 최초’란다. 그렇다면 그 독특성을 인정해야 하고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군수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엑스포가 개최된 뒤 함평은 세계적인 도시로 클 것”이라고 자신한다. 엑스포 개최로 함평군이 추진하는 궁극적 목표는 나비·곤충 클러스터다. 1980년대 중반 세계적인 전략 전문가 마이클 포터가 ‘클러스터’를 제창한 이래 수없이 많은 클러스터가 세계 곳곳에 만들어졌지만 ‘나비·곤충 클러스터’라는 이름은 없을 것이다.

함평군은 이 클러스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 나비 등 각종 곤충을 대량 생산해 세계 각국에 수출할 테고 나비와 곤충에서 나오는 각종 물질을 이용해 신약을 만들 수도 있다. 이미 작업은 시작됐다. 함평군은 전남대와 공동으로 나비·곤충 분야를 첨단 산업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로부터 인간에게 유용한 미생물과 세균을 추출해 내고 이를 제품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함평은 10년 전만 해도 ‘3무 도시’로 꼽혔다. 인구가 없고 자원이 없고 기업이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5년 후 또는 10년 후 이미지는 전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나비의 도시, 곤충의 도시로 탈바꿈할 테고 나아가 나비와 곤충이라는, 전혀 새로운 산업을 일군 지역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농업? 농촌? 10년 후 함평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함평의 이런 이미지를 생소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FTA로 맞게 된 개방 시대에 농촌이 살아갈 길은 이만큼 다양하다. 전라남도 끝자락의 작은 농촌 함평이 이를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농촌=농업’ 등식 깨면 길 보인다


우리나라 농촌 면적은 국토의 약 90%다. 9할의 국토 공간에 살고 있는 농촌 인구는 전체 국민의 18.5%이고 이 중 농가 인구는 7%다. 즉 ‘농촌=농업’이 아니며, ‘농촌 인구=농가 인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농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산업이 농업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농업을 떠올릴 때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만을 염두에 둔다. 그러나 사실상 농업이 만들어 내는 외연은 넓다. 향토음식, 농촌 관광, 농촌 경관 등은 모두 농업과 밀접하게 연관된 산업이자 가능성 있는 자원이다. 농촌이라는 장소에 관련된 수많은 파생 상품은 ‘무역’의 대상도 아닐 뿐더러 선진국이라 해도 모방할 수 없는 농촌의 새로운 시장 영역인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많다. 나눔의 농사 가족 전략을 통해 도시민을 가족으로 삼고 지역의 택배산업을 활성화한다는 ‘토고미’ 마을, 평범한 농촌적 삶에 브랜드 가치를 입혀 고소득을 올리는 ‘부래미’ 마을, 고장의 문인을 농산물과 연계시켜 마케팅하는 평창군 ‘봉평면’, 아름다운 농업 경관으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고창군’ 등이다. 이 외에도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농촌에서도 농업만이 유일한 살 길이 아니란 뜻이다.

이제 조금 다른 시각에서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들여다 보자. 단지 생산하는 농업을 넘어 농업을 둘러싼 외연, 다시 말해 농촌의 장소적 가치를 높이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전체 국민 관광의 15%를 점유하는 농촌 관광 수요의 지속적 확대, 도시민 2명 중 1명이 꿈꾸는 농촌에서의 여유로운 삶에 대한 정주 수요 구체화 등은, 생산하는 농업을 넘어 농촌의 장소적 상품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요를 흡수함으로써 우리 농업의 수요 기반도 확장되고 동시에 농업과 연관된 새로운 일자리 기회도 늘려갈 수 있다. 결국 아름다운 농촌, 편리한 농촌 가꾸기에 보다 주력할 때 농촌의 가치가 높아지고 농업의 역할도 분명해질 것이다. 이제 ‘농촌’의 지평을 넓힐 때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재광 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 [884호] 2007.04.1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