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연기군 전동역-철로변 방음벽 ‘만화 갤러리’ 변신
경향신문 글·사진 대전 | 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
임청산 교수가 60점 작업… 역 주변 ‘동심의 세계’로
‘덜커덩, 덜커덩….’
열차 바퀴소리가 요란한 9일 낮 충남 연기군 전동역 주변.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로와 철로 사이 나대지에 방음벽만 길게 세워져,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날은 예전의 삭막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잿빛 방음벽이 ‘에덴동산의 사과’ ‘농촌부부의 파종법’ ‘벽돌쌓는 일꾼들’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유명작가들의 만화작품 60점을 담으면서 ‘동심의 철로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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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역 국제만화로’를 탄생시킨 공주대 임청산 명예교수(사진 왼쪽)와 황순덕 연기군 의원이 만화작품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정혁수기자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전동역국제만화로(全東驛國際漫畵路)’. 방치된 철도 주변이 기발한 상상과 독특한 솜씨가 담긴 ‘꿈의 거리’로 바뀌기까지는 한 원로 만화가와 주민들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지저분한 시골역 주변을 전시공간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는 주민들에게서 나왔다. 평소 마을에 이색 볼거리가 있었으면 했던 주민들이 연기군 출신인 공주대 임청산 명예교수(66)를 찾아 아이디어를 구하면서부터다. 국내 최초로 만화애니메이션학과를 개설해 관심을 끌기도 했던 그는 매년 대전국제만화영상전(DICACO)을 개최하며 만화의 저변확산에 힘써온 인물로도 유명하다.
주민들로부터 “우리 마을에 만화거리를 조성해 달라”는 뜻을 전달받은 임 교수는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지난 겨울 군의원 황순덕씨(53)와 지역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한 장소가 바로 전동역 주변에 길게 늘어선 철도 방음벽이었다.
“만화를 내걸려면 마땅한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철도 방음벽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방음벽이 철주에다 철판을 깔아 만든 거라 별도 고정물을 설치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임씨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독일, 싱가포르, 멕시코 등 3만여점의 해외작품 중 60점을 엄선해 작업에 들어갔다. 광고판과 같은 비닐천 ‘플렉스’에 스캐닝한 원화를 출력한 뒤 가로 3m·세로 2m 크기의 알루미늄 프레임에다 만화를 내걸었다. 200m에 달하는 철도 방음벽이 ‘야외 갤러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만화는 이해가 쉽고, 밝고 명랑한 이미지를 선사하기 때문에 칙칙한 거리를 산뜻하게 바꿀 수 있는 좋은 소재”라며 “앞으로 여건이 허락된다면 전국 철도역 주변의 방음벽에 이 같은 만화작품을 내걸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대전 | 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