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도적으로 이를 이끌어갈 의지와 역량을 가진 지도자를 발굴, 육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그들 특유의 창의성과 열정, 끈기로 무장해 지역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물론 다양한 농촌정책을 지역 현장에 맞게 재디자인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춤형 교육·훈련 프로그램 확대
갈등해소 방안 등 심화과정 필요
더욱이 농촌개발의 추진 주체는 더 이상 중앙정부가 아니다. 중앙정부의 재정과 행정적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지역 스스로 자원과 가치를 발굴, 현실화시킬 수 있는 지자체, 지역의 주민, 다양한 민간조직과 전문가들이 모두 주체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주체들 중심에 바로 역량 있는 지역 리더가 있을 때 통합적 융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촌개발의 성공은 마을 주민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마을 구성원의 공통된 의지와 공동의 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지역의 유능한 지도자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서는 농촌개발과 관련된 많은 교육을 통해 전문가 및 지도자를 양성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1회성 또는 단기적 교육과정에다 기초과정이라 할 수 있는 의식전환 교육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과정은 물론 주민간 갈등해소 방안, 시설운영 방안 등 심화과정 등 좀 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목적에 맞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역리더’ 육성 교육 확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집행이 필요한 상황이다. 나아가 지도자를 발굴과 동시에 중요한 것은 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주로 집체식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개발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 또한 현장성이 부족했다는 평가이다. 따라서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한 현장 맞춤형 교육 및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 운영이 확대돼야 한다.
#야마시로 마을 전원아트 설계 닛타 히로미 씨
“매년 자비 들여 벼로 논에 그림”
한 사람의 희생과 역량이 지역 전체를 관광지로 만들었다. 매년 모내기와 수확철이 되면 오카야마현 미마사카시의 야마시로 마을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닛타 히로미씨가 개발한 전원아트를 보고 이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다. 전원아트는 논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지금 우리나라도 이곳을 도입한 곳이 여러곳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모아지는 예술 행위이다.
연고 야구단 캐릭터 그리기 시작
모내기·수확철 되면 온 마을이 축제
열기구 띄우고 야영 텐트도 제공
고향에서 농과대학을 종업하고 스위스에 유학까지 다녀온 후 남들처럼 평범하게 벼 농사를 짓던 그는 2003년부터 매년 자신의 논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쌀을 재배해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새로운 이벤트를 접목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던 그는 쌀 맛이 떨어지는 고대미 등 11~12개 쌀 품종을 활용해 그림을 그렸다.
처음 11종의 벼로 지역 연고의 야구구단인 한신 타이거즈의 캐릭터인 호랑이를 논에 그렸는데, 그해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하면서 각종 언론 매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고, 그림 또한 좀 더 다양해지고 색깔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확기에는 완성된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열기구도 띄어지고 야영도 할 수 있는 텐트도 제공된다.
더 큰 의미는 이 전원아트에 투입되는 비용 전부를 닛타 히로미씨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마을 주민이 산골에서 산다는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고 이 조그만한 마을이 알렸다는 점에서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도시민들에게 순수하게 농촌을 체험하게 하고 음식의 소중함을 알렸다는 것이 즐겁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해 전원아트에 투입되는 비용은 80만~90만엔(1000만~1100만원)정도가 소요된다. 다만 부족한 일손을 거들어 주는 자원봉사조직이 구성돼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논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고 100~200그램 기념품으로 만들어 나눠주는 등 행사 또한 점차 다양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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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자신의 논에 연고 야구단 캐릭터 및 동식물을 그렸던 닛타 히로미씨의 노력으로 이제 이 마을은 연 2만명의 관광객이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닛타 히로미씨의 바램처럼 이젠 그의 고향은 지난해 2만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관광지로 자리매김 했다. 특히 방문자의 재방문 비율이 50%이상을 넘어서고 있다. “전원아트에 쓰이는 벼 품종은 바람에 쉽게 쓰러져서는 안돼기 때문에 종자 확보가 매우 중요하며 종자별로 모내기를 따로 해야 한다”는 히로미 씨는 “아이들이 즐거우니 우리도 즐겁고 고향마을이 생기를 되찾은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가 이곳에서 농사만 지었으면 우리 마을이 이렇게 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먹거리, 볼거리 등을 동시에 제공하는 농촌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북 상주 녹동마을 마을대표 김관식 씨
“주민 하나하나 설득…재개발 결실”
국내 최초로 주민 스스로 재개발을 일궈된 경북 상주 녹동마을. 그 뒤에는 이를 계획하고 스스로 실천했던 김관식 씨가 있다.
도시 인근 전원마을 수준으로 변신
30가구 중 귀농자 절반 이상
주민들과 함께 소득개발사업 구상 중
예부터 노루가 많아 사슴마을로 불리던 이 마을은 요즘 활력이 넘쳐난다. 마당엔 잔디가 깔려있는가 하면 조경석과 조경수가 곳곳에 설치돼 도시 인근의 전원마을 만큼이나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곳 주민들은 2년간 컨테이너 생활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마을을 리모델링하기 위해서다. 2008년부터 공사가 시작돼 2009년 12월에 공사가 완료될때 까지 마을 주민들은 콘테이너에서 임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처럼 국내 최초로 주민 스스로가 마을 전체를 재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출신으로 면장을 지냈던 김관식씨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는 2004년에 농촌마을 재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2005년 마을 주민들에게 이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반대뿐이었다. 아직도 그냥 살만한 집을 왜 부수고 다시 짓냐는 불만 아닌 원성만이 제기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씩 만나 변화의 당위성을 이야기 했고, 이에 그의 집요한 설득에 주민들이 점차 동조하면서 재개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힘든 일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귀농자가 많이 정착할 수 있도록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는 김씨의 주장에 주민들이 반대한 것이다. 이에 굴하지 않고 설득에 나섰고, 이제는 총 30가구 주민 중 전국 각지에서 온 귀농자가 16가구에 이를 정도이다. 마사회 퇴직 후 귀농했던 이종하씨는 “가격이 저렴하고 프로그램이 좋아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며 “주민들이 단합이 잘돼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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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으로 주민 스스로 마을 재개발을 추진한 상주시 녹동마을. 이는 김관식 씨의 적극적인 노력과 주민들의 합의가 잇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김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소득개발에 적극 나서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한우를 사육하기 위해 축사 조성계획을 마무리 한데 이어 지역 특산품인 감나무 농장도 만들고 있다. 또 인근의 사찰과·연계해 마을 앞에 있는 연꽃단지를 활성화 시킬 계획이며 이를 활성키 위해 저온창고 건축도 마무리했다.
김씨는 “마을 재개발은 주민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성과로, 마을 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면서 “이제부터는 주민들이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한우 축사, 감나무 농장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