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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당도 높은 밤 품종을 만들어낸 경남 합천의 밤 재배농가 변명근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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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밤과 ‘대명밤’의 크기 비교. 대명밤은 평균 60g 정도 나가는 특대형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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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당 무게가 82g으로 측정됐다. 100g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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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선별기로는 구분할 수 없는 크기라 선별기도 주문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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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묘는 실생묘에 접붙인 2년생 묘를 말한다. 이때쯤엔 가지의 붉은 기운이 사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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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온저장 한 밤을 살펴보는 변명근 씨. 저장기간이 길수록 당도가 높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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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묘는 종자를 뿌려서 키운 묘다. 이렇게 1년을 키운 뒤에 ‘대명밤’ 가지를 접붙이는데, 가지가 붉은빛을 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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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밤 재배역사는 45년이 넘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수출 1위 농산물이었지만, 중국산에 밀려 대일수출이 크게 줄면서,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재배되는 밤의 70% 이상이 일본 품종이라는 국내 현실은 여전했고, 수확?가공하는 데 노동력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소득 작목에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2005년 달걀보다 큰 ‘대명밤’이 개발됐다. 한 농가의 노력으로 품종 국산화, 인건비 절감, 고소득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 것이다.
밤 산업 침체 속, 20년의 품종개발 노력
1960년대 후반 정부의 정책으로 전국 곳곳에 밤나무가 심어졌다. 급격히 생산이 늘어난 밤은 대일수출로 이어졌다. 주로 깐 밤 형태로 수출됐는데 1990년대 초까지도 2억 달러 가까이 수출하며 농산물 수출품목 1위를 달렸다. 당시 밤 주산지 농가들은 겨울철 집집마다 밤 까는 일을 했을 정도. 하지만 국내 인건비가 오르면서, 중국산에 일본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밤 산업은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2000년대 들어 한창때의 절반 정도로 생산량이 줄었다. 인건비는 점점 더 올랐고, 국내에서 판매되는 깐 밤 가공제품마저 중국산 밤을 원료로 하면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밤은 고소득 작물에서 고비용 작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경남 합천에서 밤농사를 짓는 변명근 씨가 농가의 생산부담은 덜어주면서, 맛이나 크기에서 고소득을 낼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한 것. 기존 일본 품종으로 잘 나가던 때에 새로운 품종을 눈여겨봤고, 밤 생산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냈다.
“벌써 20년도 더 됐네요. 20대에 시작한 밤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지내던 어느 날 오래된 밤나무에 엄청 큰 밤이 열리는 걸 봤어요. 계속 큰 밤이 열리는지 해마다 관찰했죠. 농장의 모든 밤이 이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농사꾼이라 전문 육종기술이 없어 꽤 오래 걸렸습니다. 토종 밤나무와 교잡해서 큰 밤이 안정적으로 나오는데 몇 년이 걸렸어요. 크기가 만들어졌으니 그 다음은 맛이었죠. 당도 높은 토종밤에 접붙여서 제대로 된 밤이 열리기까지 3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해서 12년이 더 흘렀습니다. 그리고 5년간 시험재배를 거쳐 2005년 품종등록 했죠.” 이렇듯 25년 노력 끝에 ‘대명밤’이 탄생했다.
달걀보다 크고, 당도 1° 이상 높아
‘대명밤’의 가장 큰 특징은 크기와 당도다. 밤 한 톨 당 작게는 50g에서 큰 건 100g까지 무게가 나간다. 60g 정도 나가는 달걀 1개와 비교할 때, 크기와 무게 모두 ‘대명밤’이 더 나간다. 일반 밤보다 무려 2~3배나 더 크다. 특히 밤 산업이 가장 많이 발전한 일본이 밝힌 최고 평균 무게 40g보다도 크다. 외관상 밤의 아랫부분인 자변이 크고 물결무늬 주름이 있는 것도 ‘대명밤’만의 특징이다. 당도도 수확 직후가 13~14°로 보통 밤보다 1° 이상 높다. 10월 중순 이후에는 당도가 점점 올라가 1~2월에는 20°를 넘기도 한다. 아삭아삭한 씹는 맛도 현재 재배되는 다른 품종보다 낫다는 평가다.
밤이 크다 보니 경도와 저장성은 당연히 우수하다. 대개 수확 후 3개월이 지난 2월쯤에 일반 밤을 선별하면 썩은 것이 5% 이상 나오는데, ‘대명밤’은 불량률이 1% 정도로 극히 낮다. 이런 장점들은 충분한 광합성을 통해 맛과 크기, 아삭아삭한 조직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하다. 비결은 일반 밤보다 훨씬 크고 긴 밤나무 잎이다. 잎 길이가 평균 25cm로 일반 밤의 2배 이상 된다. 잎 색도 훨씬 진한 녹색을 띤다. 잎이 큰 만큼 광합성 작용이 원활해 영양분과 당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대명밤’은 밤이 자라는 속도도 1.5배 정도로 빠르고 3년차부터 상당한 수확량이 나온다. 수확도 다른 밤보다 앞당길 수 있어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햇밤 출하가 가능하다. 실제로 변명근 씨가 생산한 ‘대명밤’은 지난해 추석에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대명밤’은 해외에까지 알려졌다. “따로 알리지 않았는데도 일본, 중국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일본에서 국내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구입하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아직 공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엄청나게 넓은 토지를 내줄 테니 ‘대명밤’을 심어달라고 요청이 왔어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우량 품종 보호도 안 될뿐더러, 국내로 역수입될 경우 국내 농가들이 피해를 입을 게 뻔해서 안하기로 했습니다.”
수확 쉽고, 일반 밤 가격의 3배 받아
생산농가로서 좋은 점이 또 있다. 인건비 절감이다. “일반 밤이 사양산업이 된 것은 인건비 탓도 큰데, ‘대명밤’은 인건비를 1/3로 줄일 수 있습니다. 수확할 때 한 사람이 하루에 40kg 자루 하나 정도를 줍는데, 인건비를 주고 나면 농가의 몫이 적어요. 그런데 ‘대명밤’은 1개 무게가 일반 밤 3배는 되니까, 훨씬 적은 개수를 주워도 40kg를 금방 채울 수 있어 하루에 수확 가능한 양이 늘어나죠. 그만큼 농가소득이 늘어납니다.” 또 다람쥐나 청설모가 무거워서 가져가지 못하고, 무겁다보니 밤송이째로 땅에 떨어지는데, 밤송이가 어른 손바닥 크기라서 산돼지가 가져가는 양도 매우 적다. 수확 이후에 밤 껍질을 벗기는 시간도 3분의 1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현재 대명농장에서 생산되는 ‘대명밤’은 연간 20t으로 상당하지만, 요청하는 곳이 워낙 많아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을 비롯해 백화점을 위주로 공급 중이다. 대형 마트는 요청 오는 것에 비해 일부밖에는 공급 못하고 있다. 전화주문 판매는 고정 소비자들 위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VIP 선물용으로 기업체 주문도 늘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명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물량이 적어 소비자들이 접하기 쉽지 않지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팔립니다. 현재 20개 정도 들어 있는 1kg 포장에 1만 5,000원에 판매되는데, 일반 밤은 kg당 4,000~5,000원 정도 받으니 3배쯤 되네요.”
변명근 씨는 ‘대명밤’을 개발한 공로로 지난 연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우리품종전시회에서 산림 부문 우수육종가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전시회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대명밤’을 나눠줬는데, 50g 안팎의 작은 것들을 나눠줬는데도 밤이 달걀만 하고 맛이 좋아 소비자들의 반응이 대단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연간 4~5만 주 묘목 공급
변명근 씨의 밤농장 규모는 12ha로 이 중 묘목장이 1.3ha이다. 2005년 ‘대명밤’ 품종등록에 이어, 2006년 경상남도에서는 처음으로 종자업 등록을 하고 묘목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묘목 공급은 2007년부터 했습니다. 나무를 심고 3년차부터 수확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묘목을 심은 농가들이 지난해 첫 수확했어요. 기후, 지형, 건습도에 상관 않고 어디서나 잘 자라 전국적으로 묘목이 많이 나갑니다. 밤 주산지인 충남지역이 가장 많죠. 연간 4~5만 주 정도 공급하는데, 물량을 늘리고 싶어도 고품질 생산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쉽지 않네요.”
우량 묘목이 만들어지는 데 2년 이상 걸린다.
우선 종자를 뿌려 1년간 키우며 실생묘를 만든다. 동시에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접수(접붙일 가지)를 채취한다. 이것을 남부지역 기준으로 4월 5일에서 15일 사이에 실생묘에 접붙여 1년간 더 키운다. “밤꽃이 핀 뒤 꽃이 질 때까지 10일밖에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안에 접붙이는 작업을 마쳐야 하죠. 날씨나 요일과 관계없이 하루 종일 매달립니다. 4~5만 주를 만드는 데만도 전문인력이 20명 이상 필요해요.” 접붙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늘려, 앞으로 연간 10만 주로 묘목 공급량을 늘리는 게 목표다. 이렇게 만들어진 묘목은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농가에 전해진다. 작목반 위주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동구매 형태로 요청이 들어온다. 규모화, 단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농가당 100주 이상을 기준으로 공급한다.
변명근 씨 자신도 인근 3개 읍면의 밤 생산농가들로 구성된 작목반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역 산림조합에서도 작목반을 구성해 소득 작목으로 육성하려는 논의가 한창이다. 더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고, 농가가 생산·출하하기 편하도록 국립산림과학원과 3~4년째 공동연구도 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 밤 선별기의 망 크기를 몇 단계 늘려서 제작해 쓰고 있는데, 특허를 낼 생각이다.
“밤도 사과·배처럼 품종기준 소비될 것”
“언젠가 한 백화점에서 ‘대명밤’ 시식행사를 열었어요. 밤이 크고 맛있으니까 소비자들이 ‘한국산일 리 없다. 일본밤일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좋은 국산품종을 더 많이 알려야겠단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변명근 씨는 ‘대명밤’에 이어 2009년 벌레가 거의 안 먹는 ‘대마밤’을 개발했다. 하지만 맛을 보완하기 위해 농가에 판매하지 않고, 계속 시험재배 중이다. 이외에도 2~3년 안에 발표할 예비 신품종들이 농장 한편에서 자라고 있다. 그는 중국도 인건비가 오르고 있고, 우리나라 관련기관을 중심으로 좋은 품종이 많이 개발되고 있기에 밤 산업의 전망이 밝다고 말한다. 또한 밤 소비형태가 바뀌면 국산품종의 인기가 더 높아질 거라고 자신한다.
“두뇌개발, 치매예방 등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동시에 아토피 걱정 없는 유일한 견과류가 밤이에요. 소비자들도 이제는 단순히 사과, 배가 아니라 ‘홍로’, ‘아오리’ 사과, ‘신고’, ‘원황’ 배 등 품종까지 보고 선택하잖아요. 머지않아 밤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