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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행정수도를 옮겨라-도올 1

행정수도 세종! 2006. 8. 1. 04:49
▲ 수도이전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재오·박성범 의원.
줄다리기 놀음에 온 국민이 놀아나다니...

역사는 줄다리기가 아니다. 줄다리기는 동네민속놀이에서나 재미있는 짓거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역사에서는 폐기되어야 하는 게임이다. 역사란 주어진 상황에서 그때그때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누가 먼저 효율적으로, 악을 줄이고 선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는가를 겨루는 게임이다. 우리의 현재 목표는 매우 명료하고 단순하다. 민생(民生)의 안정이다. 맹자도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 했다.

개혁? 좋다! 뭐 때문에 개혁하자는 거냐? 개혁도 궁극적으로 민생의 안정이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줄다리기를 할 때가 아니다! 빨리 줄을 놓고 양 팀이 모두 민생의 안정을 위해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뛰어가는 달리기를 해야한다. 행정수도를 이전해야 되느냐 마느냐? 이 따위 형편없는 줄다리기 노름에 온 국민이 놀아나고 있으니 통탄스럽고 한탄스럽고 개탄스럽다. 나 도올의 안목에서 볼 때 도무지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도시 문명론자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88)는 인간의 도시는 에오폴리스에서 폴리스로, 폴리스에서 메트로폴리스로, 메트로폴리스에서 메갈로폴리스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에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은 현재 메트로폴리스를 넘어선 메갈로폴리스다. 네크로폴리스란 모든 것이 해체되어 가는 죽음의 도시다. 서울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것일까?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권유에 따라 새 수도를 산태극 수태극이 겹치는 계룡산 기슭에 정하려했다. 내가 이런 말을 들먹이면 한학의 대가라고 신비로운 풍수로 우중을 현혹하려한다 말할 것이다. 걱정말라! 나 도올은 얄팍한 수를 쓰지 않는다. 행정수도이전문제는 당면한 구체적 우리의 현실의 문제로부터 치밀하고 치열하게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지방분권이니 국토균형발전이니 하는 따위의 상투적 레토릭으로는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정세와 민족통일의 비젼 그리고 남북한 군축문제와 더불어 과학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행정수도이전은 우리민족사의 필연이다!

박정희는 왜 수도를 이전하려 했나

많은 사람들이 북핵문제를 남북통일의 최대의 걸림돌로 생각한다. 그것은 오판이다. 플루토늄방식이니 고농축우라늄방식이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은 국제적 역학 속에서 북한이 고의적으로 빌미를 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단순한 "이슈"일 뿐이며 그것은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판단에 기초한 언설이 아니다. 성공적인 핵실험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 실상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계속 문제되는 것은 그 언설로 인하여 기묘한 동북아의 국제역학기류가 끊임없이 생산되며, 그것을 누가 자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취하냐에 따라 승패가 오가는 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게임은 결국 국제적 역학 속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국지전은 핵무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남·북한 양국의 군사편제가 모두 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의 국지전은 모두 재래식 무기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여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장사정포의 사정거리에 관한 것이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10시 45분, 사이공 대통령궁의 정문을 월맹의 탱크 중대가 돌파했다. 2층의 집무실에서 민 장군(General Minh)은 항복문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월맹 탱크중대의 윙(Nguyen) 중위가 뚜벅뚜벅 들어왔다. 민 장군은 말했다: "그대를 기다렸다. 항복하노라." 윙 중위는 말했다: "그대는 항복할 자격이 없다. 그대는 이미 항복할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질 않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 미국이 월맹에 지다니! 미국이 사이공을 포기하다니! 아∼ 이럴 수가!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5월, 진해 휴가지에서 베트남공산화 미중관계의 격변 북한의 기습남침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대국의 장고를 시작했다. 그리곤 새삼 충격에 휩싸였다. "아니, 6·25전쟁을 치른 이승만이 어떻게 수도를 서울에 고집했단 말인가? 아니, 이것은 적의 총칼 끝에 모가지를 들이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북한의 모든 전력은 휴전선 전방에 70%가 전진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방어전략이 아닌 브릿츠크리크(blitzkrieg)의 기습적 공격전략인 것이다. 유사시엔 군사력을 집중시켜 단기간내 서울을 장악하고 그것을 인질삼아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서부전선 최단거리는 20㎞! 도봉산에서 영등포가는 거리밖엔 되지 않는다.

철원 삼각지 중부전선도 의외로 취약하다. 이승만은 휴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겐 승공·멸공통일이라는 이념적 픽션만 있었을 뿐이다. 현실적 전략적 고려가 전무했다. 박정희는 청와대 제2경제수석 오원철에게 극비의 명령을 내린다: "휴전선에서 평양이 떨어진 만큼은 수도가 남쪽으로 이전해야하네! 180㎞:40㎞! 이건 도대체 어불성설이야!"

오원철은 391명의 각계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5년동안 장대한 국토개조계획에 들어갔다. 헬리콥터를 타고 연기와 공주군에 속한 장기지구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무릎을 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하늘이 이 나라를 버리지 않았구나! 이토록 위대한 땅을 남겨놓았다니!" 오원철은 그곳을 중핵으로 4개의 환상선과 8개의 방사선을 연결해 거미줄 모양으로 간선망을 계획하고 국토 어디든지 최단시간에 도달하는 물류체계 개편의 구상을 완성한다. 79년 10월초였다. 그러나 10월 26일 밤 박정희는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 행정수도 이전은 이미 박정희 정권 때 추진된 사안이다. 사진은 지난 79년 정부가 충남 공주 장기 지역을 후보지로 지정한 사실을 비화로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19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