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원래 기존의 힘있다 하는 특정매체에 기고할 목적으로 집필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머리 속에서 순간순간 검열이 행하여진다. 글은 그 글을 모셔가는 사람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러한 자체검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집필 당시 내 머리 속에서 짤려나간 부분을 여기 보충하여 놓는다....필자 주
1. 나는 한양의 주산인 백악(白岳)의 혈자리에서 광화문 앞으로 이순신 동상을 지나 시청 앞까지 뻗쳐있는 세종로를 바라본 적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웅장한 위용을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삼봉 정도전이 정한 그 주산 혈자리에서 좌청룡·우백호의 날개짓과 명당 전경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달랐다. 그때 난 뭔 생각을 했을까?
삼봉은 610여 년 전 바로 내가 선 자리에 서있었다. 그는 하륜의 무악주산론과 무학대사의 인왕주산론을 물리치고 백악주산론을 고집했다. 그는 임좌병향(壬坐丙向)의 남향을 주장했던 것이다. 삼봉의 구상은 탁견이었다. 무학대사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는 이 자리에서 한 오백년을 버티었다. 그리고 그 조선왕조의 혈맥은 조선총독부 그대로 이어졌고, 8·15해방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바로 그 돌난간에서 대한민국정부수립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일제총독의 관사에 경무대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박정희 군사독재의 상징인 청와대로 모습을 바꾸었고 그 수호신으로 불세출의 장군 이순신의 동상이 들어섰다. 그리고 5공·6공·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가 대를 이었다.
조선왕조의 개창에 대하여 우리는 그 나름대로 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조의 정당성이요, 우리가 새롭게 개창해야 할 민주사회의 정당성은 아니다. 그것은 고려말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광활한 조선민중의 대륙적 기질을 반도적 기질로 축소시키고, 숭무의 쾌활함을 숭문의 세련미로 억압시키고, 독자적 하늘님의 신관을 유교적 윤리의 이법으로 대치시켰다. 그리고 수직적인 모든 권위주의를 조장시키며 사대(事大)의 복종과 인종을 강요했다. 그 문약(文弱)의 결과 우리민족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였다. 옥새가 분쇄되고 국체(國體)가 상실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조선왕조의 권위주의·수직주의·관료주의의 모든 이념이 그대로 백악으로부터 뻗친 천명(天命)의 융단길 그 한자리에 오늘까지 계승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의식구조 속에서는 청와대자리로부터 시청 앞 광장까지 이르는 그 대로야말로 모든 권위주의와 수직주의의 상징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그들의 우주는 아직도 왕정의 우주인 것이다.
왕정적 멘탈리티에 사로잡혀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 우주의 축이 흔들리거나 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축이 빠지면 자기들이 생각하는 우주 전체가 붕괴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우주의 권위로운 축의 길목을 우리나라 양대 언론사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축이 이동하면 양대 언론이 근원적으로 무기력해지고 만다. 정신적 공허감이 엄습한다. 여기에 한국언론이 사력을 다해 그 축을 유지시키려고 하는 근원적 소이가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진심으로 왕정적 권위주의를 청산하려고 한다면 행정수도이전처럼 효율적인 대안은 없다. 한국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그릇된 권위의 축이 근원적으로 붕괴되어 버릴 뿐 아니라 모든 권좌의 심상이 사라져버린다. 새 술은 새 푸대에! 태조 이성계가 개성이라는 구도(舊都)에서 버틸 수 없었듯이, 민주의 새 세상은 용감한 신세계의 새로운 축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수도이전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의 맨탈리티에는 권위주의와 과거 왕정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는 것이다.
2.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복원이 모든 유위의 센타들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무위의 구심점을 창출하며, 참(Fullness)보다는 빔(Emptiness)을 추구하며, 고층건물과 교통체증으로 사자(死者)의 도시가 되어가는 것을 막고 유교적 풍류의 도시낭만을 회복하며, 과도한 밀집을 분산시켜 물류의 소통이 원활이 이루어지는 경제적 활성의 도시를 만들려하는 포괄적 구상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행정수도이전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수도 서울을 주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봉헌할 생각을 하지 말고 조선민중의 대지의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3. 조선의 군대를 통솔하는 무장이 사대문안에 버티고 서있을 수는 없다. 국민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어떻게 무관이 나라를 버리고 사대문안으로 피신하여 왕의 궁궐문만을 지키고 있는가? 이순신 동상이 세종로 한복판에 서있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군사독재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순신은 세종로에서 최소한 남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내가 생각키에 이순신 동산은 부산의 자갈치시장 한복판에 세워놓는 것이 제일 좋다. 차선책은 미8군 자리의 용산공원 한복판에 세워놓는 것이다.
4. 행정수도 이전을 모든 국민이 "경제"와 관련시켜 생각하는데, 행정수도가 빠져나감으로써 서울사람들이 못살게 된다든가 대한민국의 경제가 나빠진다든가 하는 따위의 모든 언설은 얄팍한 언론의 조작에 국민이 놀아난 데서 기인하는 기만적 편견이다. 결국 서울이라는 메갈로폴리스의 "도시경쟁력"의 문제로 압축될 것이지만, 행정수도가 빠져나가 도시경쟁력이 악화된다는 보장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을 입증할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
행정수도가 빠져나가게 되면 서울의 도시경쟁력은 여러모로 강화될 것이며, 보다 더 쾌적한 서울시민의 삶의 환경이 마련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전체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다. 여러 가지 구체적인 자료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이 도올의 간절한 호소를 국민들이여 믿어달라! 사상가는 오로지 시대적 양식에 따라 판단할 뿐이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노무현도, 박근혜도 생각치 않는다. 오로지 이 나라의 앞길만을 생각할 뿐이다.
5. 한나라당은 과거사 청산이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문제를 대적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그러한 문제를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의 허점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뛰어넘는 민생에 관한 미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의 타성이나 기득권의 보호에 얽매이지 말고 진취적인 정책으로 미래를 선취하는 의젓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6. 열린우리당은 지나치게 우리사회의 개혁이라는 좁은 문제에만 얽매이지 말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모든 폭넓은 부대적 함수를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조선반도에 국한된 한국이 아니다. 구체적 국제역학관계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개척함으로써 우리사회의 진보의 계기를 끊임없이 창출해야 한다. 집권당이라는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국가의 구원한 미래를 위한 장기적 포석을 만들어가야 한다. 국민들에게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으며 사고력이 너무 아마츄어 수준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7. 청와대가 빠져나간다고 벌써 그 주변의 고도제한 풀고 난개발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청와대가 빠져나가도 그 지역의 규제는 함부로 풀어서는 안된다. 미래의 도시는 비울수록 경쟁력이 생긴다. 청와대 일대를 아름다운 고궁과 자연의 국민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8. 餘言未盡而肩膀酸疼! 할 말은 많은데 어깨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