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높은 파란 하늘, 누런 들녘, 목덜미를 간질이는 선뜻선뜻한 바람. 이처럼 가을의 정황을 나타내는 유무형의 아이콘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단풍일 터. 그리고 조추(早秋)든 만추(晩秋)든 매년 가을을 마음으로 느끼는 시점이 되면 캐나다의 메이플로드(Mapleroad)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을 그리고 메이플로드
세계가 부러워하는 캐나다의 산림자원은 나무를 사랑하는 캐나다인의 마음이 빚은 결과다. 그러한 마음은 단풍나무(메이플)가 그려진 그들의 국기에 잘 집약돼 있다. 캐나다의 단풍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웅장한 맛이 있다. 산속 계곡의 틈새로 아기자기하게 얼굴을 내밀고 수줍게 흔들리는, 새색시 같은 우리나라의 단풍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오밀조밀한 맛은 덜한 편이지만 스케일이 커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캐나다 동부 산림대와 일치하는 세인트로렌스강 연안은 단풍나무, 포플러, 너도밤나무, 연밥피나무, 자작나무 등이 갖가지 색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어린 아이 손목 비틀 듯이 아주 간단히 훔쳐간다.
메이플로드는 바로 온타리오주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시작해 퀘벡주에 이르는 800km의 단풍길을 말한다. 동부 캐나다의 주요 도시를 단풍이라는 주제로 묶어주는 이 메이플로드는 엄청난 길이도 놀랍지만 캐나다의 과거와 오늘을 상징하는 많은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살뜰한 기회도 제공해 더욱 반갑다.
자, 이제 메이플로드를 따라 캐나다의 다양한 명소들을 만나보자. 장쾌한 자연이 폐부에 콱 박히고 누군가의 표현처럼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비틀면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은 단풍의 정취를 오롯이 감상하는 것은 기본이다.
토론토
인디언들의 언어로 ‘만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토론토는 메이플로드를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다. 호주의 수도를 캔버라가 아닌 시드니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듯이 금융과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브랜드 인지도가 짱짱한 토론토 역시 캐나다의 수도로 곧잘 오해받는다.
토론토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CN타워가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지만 역시 압도적인 이미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다. 특히 파란 비옷을 입고 ‘안개속의 숙녀호(Maid of the Mist)’에 승선, 나아아가라의 심장부로 한 발짝씩 다가갈 때의 그 전율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나아아가라를 메이플로드의 시발점으로 삼는 이유는 단풍으로 곱게 물든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아가라를 알현하고 나서 차로 10여분 정도 이동하면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Niagara-on-the-lake)라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는데, 마치 19세기 영국의 어느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후 왕당파들이 이곳에 옮겨와 정착한 탓이다. 영국풍의 건물과 거리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자수제품과 도자기 등을 파는 예쁜 상점들이 즐비하다.
이외에 많아야 너댓명 정도가 예배를 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와 캐나다의 명물인 아이스 와인 양조장 등을 구경하며 한껏 여유로움을 부려도 좋다. 조석으로 기온차가 큰 나이아가라 주변에서만 생산되는 아이스 와인은 알싸하면서도 적당히 달콤한 맛을 낸다.
오타와
캐나다의 수도로서 토톤토에 비해 훨씬 조용하고 아담하면서도 품격을 갖추고 있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집들은 제각각 개성을 뽐내며, 집 뒤로는 광활한 들판이 이어져 있어 부러움을 자아낸다.
오타와의 가을 단풍도 멋들어지지만 해마다 봄이 되면 도시 곳곳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오색의 튜울립도 가관이다. 오타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고딕양식의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국립예술센터, 리도운하, 캐나다 자연사박물관 등이 있다. 특히 오타와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알공퀸 국립공원은 구석구석 붉게 물든 단풍잎들로 관광객의 시선을 붙들어 매는 곳으로 메이플로드의 필수코스다.
로렌시아 고원과 몬트리올
나이아가라가 메이플로드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메이플로드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다. 몬트리올의 북쪽으로 넓게 자리하고 있는 로렌시아 고원은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휴양지로 가족단위 여행객이나 배낭여행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기도 하다.
유명한 휴양지 몬터벨로를 비롯해 유명인들의 별장이 곳곳에 자리한 로렌시아 고원은 가을이 되면 완만한 고원 일대가 온통 붉은 빛의 낙엽수림으로 뒤덮여 장관을 연출한다. 몬트리올이나 퀘벡 같은 저지대 도시들이 아직 녹색을 품고 있을 때 이미 이곳 고원 숲은 온통 새빨간 옷을 입고 있다. 이렇게 수놓아진 산들이 아득히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는데, 이 ‘가을의 전설’을 대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녹신해지고 몸 안 어딘가 똬리를 틀고 있을 시심이 저절로 꿈틀거림을 느끼게 된다.
캐나다 제2의 도시로 ‘북미의 파리’라 불리는 몬트리올은 중세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분위기의 고층건물이 늘어선 신시가지로 구분돼 있어, 신구의 조화가 아름답다. 파리 다음으로 큰 프랑스어 사용 도시이다.
퀘벡시티
중세 프랑스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는 곳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속의 프랑스.’ 구시가지의 중심가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유서가 깊은 곳이다.
퀘벡시티의 루아얄광장 앞 부두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세인트로렌스강을 지나다 보면 샤토프롱트낙을 비롯한 퀘벡시티의 유유자적한 아름다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세인트로렌스강의 중앙에 떠있는 오를레앙섬은 퀘벡시티와는 다리로 연결돼 있는데, 수백 년이나 된 집과 제분소, 교회 등이 아직도 바래지 않은 프랑스 문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랜된 도시이자 북미 대륙에서 유일한 성곽도시인 퀘벡시티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좁은 골목 사이를 샅샅이 훑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걸음걸음 고풍스런 중세 프랑스가 발끝에 채이고, 안온한 분위기가 온몸을 감싼다. 사진 = 캐나다관광청 (02)733-7740
출처:트레블타임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