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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06. 가을 남이섬

행정수도 세종! 2006. 10. 26. 08:24

양수리를 지나는데 물안개가 가득 피어있었다. 남이섬에도 안개가 자욱하겠구나...

 

아침 8시 반에 도착한 남이공화국엔 안개는 없이 바람만 차가웠다. 남이섬은 워낙에 추운 동네다. 4월 말까지 거의 겨울 날씨라고 보면 된다. 

 

오래 떠나있었던 나는 그런 거 다 잊어버리고 그냥 '서울차림'으로 왔다.

 

 

 

안데르센홀 앞의 조형물                           안데르센홀 옆 튜립나무 길

    철판을 용접으로 잘라낸 뒤 녹슬게 한 것         제법 분위기가 깔끔한 길이다.

    나도 남이섬에 있을 때 용접을 배웠었다.         안데르센홀에서는 주로

    용접은 재미있지만 좀 무섭다.                       어린이책에 관련된 전시를 한다.

                                                                  

 

 

 

남이섬은 섬이다. 고로 배를 타고 들어간다. 아주 짧은 뱃길, 하지만 사람들은 눈 앞에 다가오는 얕고 작은 땅덩어리에 기대를 가지고 바라본다. 배에서 서성인다.

 

남이섬처럼 생긴 섬은 대한민국에 또 없다. 그래서 남이섬은 재미있는 곳이다. 섬도 아닌 것이 섬이다. 어쨌든 배가 끊기면 못나오니까...

 

아, 물론 헤엄쳐서 나올수는 있다. 남이섬에 살다 어느 날 몽땅 사라져 버린 다람쥐들 처럼...(예전엔 남이섬에 다람쥐가 무척 많았으나, 청설모와의 영역다툼에서 패한 뒤 모두 사라졌다. 난 다람쥐들이 헤엄치거나 뗏목을 만들어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

 

 

 

 

 

강가에 지어진 문학인촌.                           강을 배경으로 서서 그림은 아주 좋은데

    아주 작은 방갈로지만                                    겨울엔 너무 추울 것 같다.

    제대로 된 목수가 지은 집이다.              

 

 

 

남이섬은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사람 그림자가 없을 때 나타난다.

 

그래서 남이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보기란 확률적으로 힘든 일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남이섬은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새벽 일찍 강가를 거닐거나, 달밤에 기다랗게 늘어선 나무 사이를 지나노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예전엔 사슴가족이 있어서 가끔 새벽 산책길에 그들과 마주치곤 하였다. 신기하게도 사슴들은 낮에는 어디로 숨는지(그 좁은 섬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새벽 한적한 강가에서 마주친 그들은 놀라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며 사사사 어느 틈엔가 풀숲으로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 천박한 인간들을 무시하고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참으로 격조있는 동물이라는 생각에 만나면 가만히 목례를 건네었다.

그러면 사슴은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사라진다. 이제 그 사슴들은 남이섬에 살지 않는다.

 

 

 

 

문학인촌이 있는 강가의 반대편 강가에 지어진 황토별장. 여기엔 3개의 방이 있다.

    도예가가 직접 구운 도자타일로 꾸민 화장실과 남이섬에서 짜 만든 나무탁자

    황토 벽의 장식 등등... 나름대로 멋을 부린 호화 별장인데 무엇보다 풍광이 좋다.

 

 

 

황토별장은 메타세콰이아나무 길이 끝나는 쪽에 지어졌다.

메타길이 끝나고 강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골목은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짝짓기를 하던, 오리들의 구역이었다.

 

사람들은 메타길의 중간쯤까지 걸어왔다가 서둘러 기념촬영을 하고 빠져 나간다.

 

강물이 지들끼리 어울려 흘러가는 걸, 나무들이 지들끼리 어울려 뻗어가는 걸 좋아하듯이 사람들도 지들끼리 복작복작 떼지어 어울리는 게 아무래도 마음 편한가 보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로만 걸어다니고 찾아다닌다는 걸 남이섬에서 깨달았다.

 

 

 

 

 

메타길 바로 옆엔 은행나무길이 있다. 남이섬에서 햇빛이 제일 잘 들고 단풍이 제일 먼저 드는 길이 은행나무길이다.

 

똑 같은 사람들이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사진을 찍어댄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는 은행잎들은 곧 지저분해지지만 사진으로 보는 그것들은 그저 아름다운 노랑일 뿐.

 

은행나무 길 왼편엔 타조우리가 있었다. 눈망울이 큰 그 순한 짐승들은 한때 남이섬의 폭군으로 자리 잡았으나 연일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슬프게도 멸망하였다.

 

타조들은 가끔 우리 안을 미친듯이 질주하기도 하고 서로 물어 뜯으며 괴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타조들이 뗴지어 우리 안을 뱅뱅 뛰어다닐 때면 (날개를 퍼덕이기 때문에)허벅지까지 드러난 맨다리가 너무나 민망했다.(타이즈 입은 남자들처럼...) 

 

그래도 눈은 참 예뻤던 그 동물들은 소리 없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내 간을 여러번 철렁이게 하였다. 타조는 순한 동물이지만 덩치가 워낙 크고 힘도 엄청나서 살짝만 건드려도 다리가 삐긋~ 뼈에 금이 가서 입원한 직원도 있었다.

 

그 추억의 타조 역시 이제는 남이섬에 있지 않았다.

 

 

 

은행나무길 옆으로 있는 왕벚나무길.

    늙은 가지가 휘늘어진 이 나무 아래를 혼자서 어두운 밤에 걸어가노라면

    정말로 으시시하지만(막배가 뜬 후 남이섬은 거의 모든 조명을 끈다)

    꽃잎이 흩날일 때면 정말 근사하다.

 

  

 

북쪽 강변에 있는 억새길                       불자동차 두 대가 풀장 옆에 들어와 있었다.

 

 

 

이 억새밭의 분위기는 가을에 핀 꽃보다 오히려 무성한 풀밭으로 보이는 여름이 좋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달밤에 이 길을 걷다보면 풀숲 사이에서 여우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 느낌이 썩 괜찮다.

 

바로 옆이 물가라서 어른 키를 훌쩍 넘어 자란 억새는 그다지 길게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무성한 느낌을 준다. 이 길은 섬의 동쪽 끝에 있는 남이호텔 뒤에서부터 서쪽 끝에 있는 선착장까지 죽 이어진다.

 

억새밭과 야생화로 시작하여 밤나무 자작나무까지 골고루 섞인 북쪽 강가 길은 남이섬에서 가장 한적한 길이다.

 

 

 

 

중앙광장에서 섹서폰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 잘 생긴 닭님!은

   남이섬에서는 특히 가을에                          사람들이 못보는 남이섬 뒷세계의 군림자.

   이런 연주를 많이 기획한다.                   

 

 

 

온갖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남이섬엔 분재에 평생을 미친 할아버지도 있다.

   나는 그분의 분재를 무척 좋아하여 가끔 방문하여 감상하곤 하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분재원 건물은 철거되고 작품들은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이 두 점의 작품 역시 옛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분재원의 이름은 화석원이다.

늘 술에 취한 듯 보이는 원장님이 삼사십년을 가꾸었다는 분재들로 화석원은 늘 신선하고 촉촉한 분위기였다.

 

나는 원래 분재라는 것 자체를(그 과정을) 싫어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경이로운 작품들은 그런 나의 취향따위 싹 무시해버리고 오로지 감탄만 자아냈다.

 

화석원은 본래의 뜻을 상실해버리고 작은 화분에 야생초를 담아 판매하는 상점이 되어있었다.

늘 혈기왕성 얼굴엔 화색이 돌던 원장님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듯한 표정으로 잠깐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야생초도 물론 예뻤지만은... 마음 한편이 서글퍼졌다.

 

 

 

남이도요를 생산하는 도자실. 입구의 진열장

 

 

 

유약실험을 한 작은 타일만한 견본들이 벽에 주루룩 음표처럼 붙어있다

 

 

 

도자실 옆에는 유리공예실도 있다

 

 

 

마침 대형사각접시를 만든다고 흙을 치대기 시작하여 옆에서 구경했다.

   먼저 둥그런 기둥으로 만들어진 흙을 바닥에 내리쳐서 네모나게 만든다.

 

 

 

7mm 두께의 긴 자를 양쪽에 놓고 낚시줄을 7mm로 잘라진 흙반죽을 석고틀에 쒸운다

   양손에 잡고 흙을 슬라이드한다. 

 

 

칼로 테두리를 깨끗하게 잘라낸다.            잘 다듬어서 반나절 정도 말린다.

 

 

 

어느 정도 모양이 굳어지면 틀에서 떼어 내어 모양을 다듬고 무늬를 넣은 뒤에 그늘에서 건조 시키고

초벌구이를 한 다음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다.

 

노래박물관 앞에 있는 이 장작가마는 기술자들이 들어와서 만든 제대로 된 오리지널 가마이다. 남이섬 안에서(식당이나 숙소) 사용하는 자기들은 전부 이 공방에서 만들어 구워낸 것들이다.

 

이런 가마가 대한민국에 별로 없다는 걸 생각하면 남이섬은 참 희한한 곳이다.

쌀농사만 지으면 남이섬은 그야말로 공화국으로 손색이 없겠다는 말에, 머지 않아 수중재배로 농사를 짓는 남이섬 풍경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정말...그럴지도 모른다!

 

 

 

 

햇살 맑고 따땃하니 구경 다니기 딱 좋은 날씨였지만

내가 몸 담고 있던 곳을 구경 다닌다는 것은 못내 어색한 일이었다.

 

일행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고 걸음을 돌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있는 곳을 찾아 가보니

역시나! 갑자기 잡힌 일정을 벼락치기로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기간 중국음식을 체험한다는 그 곳은 정말 썰렁하였는데(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만들었는지 원!)

내 눈에는 그 정신없고 준비가 부족한 시설은 그냥 당연해 보였고 중국인 요리사와 의사 소통이 되는 옛동료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가방을 벗어 놓고, 쟁반을 들고 찻잔을 나르며 일손을 돕고 있는데

남이섬 대표이신 강선생님이 손님들을 몰고 오셨다(정신 없을 때 더 정신없게 하는 것이 그 분의 특기 중 하나이다) 

그간의 안부야 물을 것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을 시키는 선생님이며, 그 까탈스러운 눈맛을 기억하며 거슬리지 않도록 신경쓰는 분주한 내 모습이라니...  

 

 

 

밤 늦은 강변을 달리는 좌석버스에 앉아 잠실로 들어오는데, 아 피곤하다. 

짧은 하루 여행치고는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여기 있을 때가 재미있었지? 자주 와.

글쎄, 선생님의 그 말씀에 별 반항심이 안 드는걸 보면 썩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나본데

예전에 어땠더라? 남이섬을 돌아다닐 때는 일행이 있어서 그런 생각 할 틈도 없었지

 

가을... 남이섬은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처 : 살짝, 삐딱하게
글쓴이 : 파란만장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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