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자 도덕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歸根(귀근)'이잖아.
'그 뿌리로 돌아가는 고요함'
나, 유럽 문명의 뿌리가 보고 싶었어. 그 뿌리를 본 소회란,
먼저 내가 뉴욕과 보스톤의 거리를 걸었을 때의 놀라움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빠리를 보았을 때 무척
작아졌어.
다시 그 빠리가 작은 점이나 하나의 동네로 바뀌는 것을
느꼈어.
이탈리아에 와서.
나라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할까.
아니 나라
전체가 거대한 관광단지였어.
옛날 경주에서 외국인에게 내가 앵무새처럼 말했지.
"경주는
울타리가 없는 박물관이라고(musium without wall)"
나 솔직히 좀 창피스러운 부끄러움에 화끈 하더군.
그러나 내가 로마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였니 하고 묻는다면
'어~~ 천년고도 로마에 낙랑장송이 왠말인가' 였어.
속리산과 해인사, 강원도에서나 보는 우람한 소나무가 로마
시내를
뒤덮고 있지 않은가.
철갑을 둘러싸고 투구를 머리에 인 듯한 정이품 소나무가
로마의
가로수라니. 그래 여기 로마에서 로마인이 가장 사랑스러워
하는 나무는 감람 올리브 나무나 오렌지 나무가 아닌, 영광과 승리의
상징
소나무였어.
이렇게 소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또한 커구나.
베트남인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최고의 휴양지 다라트에도 야자수가
아닌
소나무가 있었지.
따뜻한 나라의 소나무는 물론 무엇인가 다른 느낌을 준다.
소렌토로 가는 길, 버스 창문에서 바라본 고대 로마의 길
아피아가도(Appian way)에도 줄지어서 들판을 달리는 것은 끝없는
소나무의 질주였어.
차창 밖으로 보는 풍경은 제주도의 애월리나, 밀양의
봄녁처럼
너무나 한국과 닮아 있구나.
푸른 초원과 밀밭에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이 없었다면
나는 한국의 국도를 달리는 듯한 느낌만 들었을거야.
노오란 유채꽃이 펼쳐졌다가, 군데군데 백목련, 청목련이
터지고
분홍빛 복숭아꽃과 벚꽃이 피어나다, 하얀 매화가 만발하고 다시
녹색의 파아란 밀밭들.
하지만 그 빛은 우리와는 조금 달라. 더 환한 밝은 빛이라 할까.
유럽 문명이라는 거대한 존재. 이 밀도 높고 찬연한 대리석 경질의
유럽 문명 앞에 개나리와 벚꽃과 소나무를 떠올리다니.
우리 아시아인의 눈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이 거대하게 노출되어
있는 이 우유빛 강도의 대리석은 나에게 연한 피와 살을 떨리게 하였어.
흙과 나무와 진흙과 기와로 지어 올린 경주에서 남은 것은 거의
없잖아.
모두 자연으로 돌아갔는지, 파괴되었는지, 사라졌는지 우리의 눈과 피부로
느끼는 문명은 거의
없어.
내구성! 대리석이란 경질의 밀도 높은 돌덩어리를 하나 하나 쌓아
올려
깎고 다듬고 조각한 이 이상한 괴물들 앞에 장중한 무게와 단아한 규칙이
무엇인가 역사와 인간을
상징하다니.
또 한 번 나는 헤겔의 아시아 역사를 보는 시각이 서구의 편협한
편견인지
아니면 그것이 냉정한 객관의 산물인지 이십여년전의 갈등으로 돌아갔어.
아시아에선 왕과 왕조의 영고성쇠만 있었지 영원히 전개되지 않는
도돌이표만
찍고 있었다.
그러기에, 유럽은 작고 작은 도시국가의 수많은 왕이 있었기에, 왕이란
절대
존재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는지 몰라.
몇천년전 그리스와 로마에서부터 싹튼 공화정, 평민, 호민관, 연합정치,
의회,
원로원 등에서 민주라는 씨앗과 맹아를 언제나 간직하고 있었지.
그래서 유럽인들은 절대왕조나 절대권력이 한 시대를 장악하고
풍미하더라도
언제나 그리스와 로마를 회상하며 스스로 그것을 끝없이 붕괴하며 허물수 있었어.
유럽인들은 모두가 왕이며, 평민이며, 하나의 민족이며, 하나의 언어이며,
하나의 핏줄이라는 다원주의라 할까.
국가보다 도시, 나라 보다 작은 민족, 그리고 자기가 쓰는 말에 대한 애착.
따딱따딱 붙은 작은 나라에서, 더 작게 띄움띄움 작은 도시들, 민족들, 지역으로
갈라져 그것들을 모두 모아야 하나의 나라가 간신히 되고, 그 나라들을 몽땅
다 모아야 전체 유럽이 겨우되는
유럽 문명의 특이성이라 할까.
소렌토로 가는 길에 루치아노 파바로티 자신이 가장 아꼈다는 '마파리(꿈과
같이)'
를 에릭코 운전기사가 틀어 주더군.
중학교 2학년 때 'Breaking away'라는 영화에서 드문 드문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어머니가 전축판 위에 올려다 놓고 들었다는 가곡.
마파리. 꿈과 같이.
그 때, 어떻게 이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감미로운 음악이 있었지 하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마파리. 꿈과 같이.
햇빛을 받아 아침의 고요함에 들녁에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탑에서 나는
소리마냥
자박자박 꿈길에서, 꿈처럼 들려오는 소리.
그래 내가 이탈리아에서 본 인류의 찬연한 유럽문명도 나에게는
며칠밤의
아름다운 꿈의 幻(환) 이런지도 몰라.
견고한 대리석 사이에 피어나는 한 줌의 까만
때나 이끼, 풀잎에 마음이 뒤흔들리는
나는 아무래도 아시아인가 봐.
모든 것이 빈 곳으로 돌아가 고요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노자와
장자도
또 다른 하나의 꿈의 환이런지도.
카프리나 나폴리에서 너에게 또 편지 할께.